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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영화 <그녀가 죽었다>의 반전은 정말 반전일까?

<줄거리>
 
주인공 구정태는 공인중개사이다. 그에겐 매우 고약한 버릇이 있는데 고객이 맡겨놓은 집 열쇠를 이용해 고객의 집에 들어가 이것저것 훔쳐보고 사소한 물건들을 마치 전리품처럼 갖고 나오는 것이다.
한소라는 소위 말하는 SNS 인플루어서다. 대개 인플루언서들이 그렇듯이 그녀 역시 ‘관종’이다. 팔로워와 ‘좋아요’를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해 명품들을 들고 있거나 입고 있거나 먹는 사진들을 올리는데 나중에는 유기견 봉사활동 사진들을 올린다. 팔로워들은 그런 그녀의 ‘선행’에 쉽게 감동하고 후원금을 보낸다.
그런 어느 날 구정태의 시선에 한소라가 포착되고 그는 그녀의 모순된 행동에 흥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그녀의 집에 침입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쉽지 않다. 그런 어느 날 한소라가 집을 내놓는다며 그에게 찾아오고 스스로 집 열쇠를 내놓는다. 앗싸, 구정태는 한소라의 집을 탐색하기 시작하는데... 어느 날, 그녀의 집에 들어갔다가 피칠갑이 되어 있는 그녀의 시체를 발견한다. 겁이 난 그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만 누군가로부터 협박을 받기 시작한다.
 

그는 그녀의 가짜 모습을 보고 만다.

 
이 영화는 캐릭터 설정이 매우 흥미롭다. 구정태는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것을 좋아하고, 한소라는 타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것을 즐긴다. 그런데 정태는 소라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어 하고, 소라는 자신의 ‘가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각종 SNS에 자신의 일상을 전시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사실 이 블로그도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닌가), 그래서 관종과 관음이 공존하는 시대에 시의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영화다. 영화는 묻는다. 수많은 ‘관종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하고,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가. 우리는 타인의 행복과 불행에 대해 각각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런 사람들의 특성을 영악하게 포착한 한소라는 팔로워와 ‘좋아요’를 늘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SNS에 선행을 '전시'하는 그녀

 
구정태의 집에 거대한 개미집 유리관이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설정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훔쳐보기를 좋아하는 인물이다. 나중에 한소라는 그런 구정태의 집에 침입해 개미집을 깨트려 버린다. 타인에게 가짜인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그녀가 전시된 형태의 개미집을 깨트리는 행위는 아이러니하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타인의 가짜 이미지에 속곤 한다.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은 반전을 너무 쉽게 그리고 한꺼번에 와다다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보면서 스스로 추리하고 그래서 이면의 진실을 발견하게 하는 대신 작가는 자신이 알아서 다 풀어버린다. 물론 반전이 놀랍기는 하다.
반전 이후 전개되는 내용은 스릴러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어서 보는 내내 쫄깃했다. 혹시 내 집 현관문을 누군가 누르는 것 아닐까, 걱정이 돼서 자꾸 현관 쪽을 바라봤을 정도니까.
 

타인의 삶을 훔쳐보기를 즐기는 남자,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여자

 
이 영화에서 호감이 가는 캐릭터는 별로 없다. ‘관종 사이코패스’인 한소라는 말할 것도 없고 구정태 역시 타인의 집에 침입해서 훔쳐보고, 비록 사소하지만 남의 물건을 갖고 나오는 등 그 역시 비호감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구정태의 편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대개 어떤 영화들에서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거대한 범죄 앞에서 사소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겐 면죄부를 주는 우를 범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편향성을 비켜 간다.
 
상업성에 시의적절한 주제와 질문을 섞어 넣은 괜찮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