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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 인간성의 민낯을 보다.

 

그동안 영화가 극한 상황에 놓인 인간들이 얼마나 야만성을 띄는지, 나와 내 가족, 내 공동체만이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까지 할 수 있는지 등을 궁구한 예들은 많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여기에 한국적 특수 상황을 결합해 새로운 주제를 제시한다.

 

한국인의 욕망이 여과 없이 투사되는 아파트는 사는(living) 곳이 아니라 사는(buy) 것으로, 최대의 재산이자 한국 사회의 계급성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역세권에 가까운 비싼 아파트와 비역세권인 서민 아파트 그리고 임대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천박한 계급성을 우리는 굳이 영화가 아니라도 현실에서 얼마든지 발견하고 있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자기들이 사는 고급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학교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출입문을 잠가버리는 것이 그런 예들 중의 하나다.

 

 

그런데 모든 것이 무너지고 오로지 아파트 한 채만 남은 영화적 설정 안에서 이 아파트는 가장 치열하게 사는(living) 곳이 된다. 이 안에서 인물들의 지상 최대의 목표이자 목적은 오로지 먹어서 살아남는 것뿐이다.. 동물적 본능만 오롯이 남은, 그래서 흡사 원시 공동체와 다름없는 곳에서 어떻게 권력이 탄생하는지, 지배와 복종의 메커니즘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내 것을 지키기 위한 인간의 이기심과 광기는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 영화 안에서 선연하게 펼쳐진다.

 

 

이 인물들을 보면서 우리는 영화가 던지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과연 이런 극단적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내가 먹을 것을 남들과 나누고, 그래서 내 몫이 줄어든다면, 그래서 만일 내가 굶어죽게 된다면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인자한 미소를 띠며 똑같이 남들과 나눌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드물 것이다.

 

한편,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만이 선택받았으니 그 외는 철저하게 배척해도 된다는 이기심은 우리 현실 안에서도 크고 작게 발견할 수 있다. 서두에 예로 든, 고급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가 개인 간에 벌어지는 작은 사례라면, 한국에 일하러 온 이주 근로자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는 국가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탄탄한 서사 외에도 기술적 성취도 꽤 눈여겨 볼만하다. 모든 것이 허물어진 도시의 살벌한 풍경을 구현한 세트와 CG 기술이 매우 놀랍다. 이 정도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부럽지 않을 정도이다. 불안과 광기를 얼굴의 잔근육만으로도 표현해 내는 이병헌의 연기도 명불허전.

 

다만, 이야기가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단점. 하지만 그러한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이 영화는 꽤 깊고 묵직한 질문과 화두를 관객 앞에 던지면서 일정한 성취를 거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