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의 shooing과 기자들의 shooting 사이에서
미국 전역에서 진영이 서로 다른 집단 사이에 내전이 벌어진다. 영화 안에서 그 이유는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의 도입부에 3선을 역임한 대통령이 자신에게 반대하는 국민의 일부를 ‘적’으로 돌리며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승리를 독려하는 연설을 한다(바로 엊그제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본 장면이다). 그러한 장면으로 봐서, 독재자인 대통령 편에 선 정부군과 반정부군인 민병대 사이에 벌어진 내전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시내에는 두 진영 사이에 극렬한 시가전이 펼쳐지고 평소 쇼핑을 즐기던 거리에 피로 물든 시체들이 나뒹군다. 내전으로 인해 먹을 것이 부족해진 사람들은 마치 난민들처럼 구호품을 배급받는다.
이때 네 명의 기자들, 리와 조엘, 새미와 제시가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한다. 내전을 일으켜놓고 백악관 안에 숨어버린 대통령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서다. 20대 초반의 신출내기 기자 제시는 백전노장의 종군기자 리를 자신의 롤 모델로 삼고 있다. 그래서 이 위험한 여정에 고집을 부려 동참한다.
영화는 이들의 로드무비 스타일로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내전 상황이 펼쳐진다. 기자들이 전투를 벌이는 군인들과 바짝 붙어 다니며 촬영을 하기 때문에 관객은 이들과 함께 총알이 비처럼 쏟아지는 격전장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게 된다.
기자들은 어느 진영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현장을 있는 그대로 기록할 뿐이다. 베테랑 기자 리가 초짜 기자 제시에게 하는 말에서 그러한 시각이 드러난다.
"우리는 질문을 하지 않아. 그저 기록할 뿐이지. 질문은 우리 기록을 본 사람들이 할 거야."
여기서 군인들과 기자들의 행위에서 유사성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군인들은 이 내전의 원인이나 정당성, 정의 따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상대방에게 총을 들이대고 쏜다(shoot). 기자들은 그런 군인들에게 네 편 내 편 가리지 않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는다(shoot). 물론 그 행위의 결과는 다르다. 군인의 쏘는 행위는 누군가를 죽게 하지만, 기자의 찍는 행위는 더 이상의 생명들이 죽지 않도록 고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전이라는 이야기가 한 축을, 그리고 기자의 기록이라는 이야기가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이 워싱턴까지 가는 동안 목격하는 내전의 현장들은 참혹하고 끔찍하다. 극단적으로 갈라진 사람들은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간주해 바로 사살해 버린다. 주인공들이 도중에 들른 어느 마을은 무척이나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여서 마치 미국이 아닌, 뚝 떨어진 다른 나라처럼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이 마을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 민병대원들이 숨어서 언제든 적이라고 간주하는 사람들을 쏠 준비가 되어있다. 보이는 적보다 보이지 않는 적들이 더 공포스러운 법. 그래서일까. 이 마을은 겉으로는 매우 평화로워 보이지만 거리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유령 마을 같다.
작은 진지를 구축하고 어느 저택에 숨은 사람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민병대원에게 주인공이 묻는다.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냐고. 그러자 나른하고 무심한 표정으로 남자가 대답한다. 그저 ‘총을 든 사람’이라고. 저 총을 든 사람들이 나를 죽일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먼저 저 사람들을 죽여야 하는 것이다. 이때 화면에는 이 군인들이 진지에 엎드려 있는 모습과 리가 풀밭에 편안한 표정으로 엎드려 있는 표정이 대비되어 펼쳐진다. 이 장면을 구성한 감독의 의도가 명확해 보인다. 이 풀밭은 내전이 벌어지기 전에는 주민들의 평화로운 소풍 장소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란 꽃밭도 언제든지 피바다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한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다. 어느 마을에 주둔한 군인들에게 붙잡히는데, 이 군인들은 유색 인종들을 골라서 죽인다. 여기서 미국 사회가 직면해 있지만 외면하고 있는 인종 갈등과 사회 양극화가 단적으로 펼쳐진다.
이들에게 방금까지 농담을 주고 받았던 동료들을 잃은 주인공들은 그 극단적인 혐오와 폭력, 공포를 경험하고 몸서리를 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내 기자로서 냉정한 자세를 잃지 않았던 조엘은 피를 토하듯 울부짖는다. 이후 워싱턴 D.C에서 벌어진 시가전에서 리는 카메라를 들지 못하고 마치 넋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자꾸만 움츠러든다. 그토록 이성적이었던 베테랑 종군기자조차 정신을 못 차리고 주저앉게 만드는 참혹한 내전의 한복판에서 오히려 햇병아리 기자 제시는 기자로서 각성한 듯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사실 앞서 쓴 것처럼, 이 영화는 내전 이야기를 씨줄로 하여 기자들의 이야기를 날줄로 엮어가는데 그래서 정확히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봐야 할지 애매한 측면도 있다. 군인들의 무차별 shooting을 고발하는 것인지, 기자들의 shooting 정신을 알리고자 하는 것인지. 엔딩 스크롤이 오를 때 나오는 흑백 사진으로 봐서 후자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것 같다.
한편, 이 영화에는 참혹한 전쟁 장면과는 어울리지 않게 발랄하고 유쾌한 배경 음악을 삽입했다. 그동안 전쟁 영화들에서 종종 아이러니를 극대화하기 위해 끔찍한 장면에 아름다운 음악을 삽입하곤 했다. 대개는 블랙 코미디 영화들에서 특히 그런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삽입한 배경 음악들은 어딘지 좀 관습적으로 안이하게 사용된 것 같은 느낌을 줄뿐만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
이 영화는 12.3 내란 사태를 겪은 우리에게는 남다르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대통령 탄핵과 체포를 둘러싸고 양극단으로 나누어진 진영이 대립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것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온몸으로 겪고 있는 현실이란 점이 매우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다만 우리가 난사하는 것은 총알이 아닌 혐오와 공포가 실린 말의 화살이란 점이 다를 뿐.
* 이 리뷰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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