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끝이야 - 가정 폭력의 대물림 끊기
* 줄거리
어느 날 아버지의 부고를 들은 릴리는 장례식장에 참석한다. 자식으로서 문상객들 앞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점 다섯 가지를 말해야 하지만 이것을 거부하고 나가버리는 릴리. 낯선 도시에서 꽃집을 차리며 새 출발을 준비하던 그녀는 우연히 라일이라는 외과의사를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 어린 시절 첫사랑 아틀라스를 만나게 된다. 그는 릴리가 어린 시절 가정에서 겪은 상처를 잘 알고 있다. 이 상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헤어졌던 두 사람 사이에는 아직 서로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다. 그런데 남편 라일이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하면서 그의 숨겨져 있던 날것의 이면이 드러나게 된다.
우연히 아무런 정도 없이 보게 된 이 영화가 처음엔 그렇고 그런 멜로드라마인 줄 알았다. 영화의 중반이 될 때까지 두 사람의 밀당이 이어지고, 그 이야기의 틈 사이로 릴리와 아틀라스 간의 풋풋하고 따뜻한 첫사랑 이야기가 끼어든다. 그래서 중간쯤 보다가 시청을 중단하려고 했다(게다가 라일 역의 배우가 너무 느끼하게 생겨서 볼 때마다 부담스러웠다. ㅋ)
그러다 십수 년 만에 릴리와 아틀라스가 재회하면서 이야기에 긴장감이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다시 자세를 바로 잡고 보게 되었고 아무런 정보 없이 보게 된 것 치고는 괜찮은 영화였다.
이 영화는 가정 폭력 혹은 데이트 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미덕을 찾자면, 할리우드 스릴러 장르 영화 특유의 쉬운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 할리우드 영화였다면, 남자 주인공 캐릭터에 사이코패스 성향을 최대한으로 집어넣어 이야기에 더 쫀득한 긴장감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여주인공이 남편을 피해 멀리 달아나고 남편은 그녀를 집요하게 쫓아와 전보다 더한 폭력을 저질러서 관객을 가슴 졸이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남편은 여주인공의 직접적인 응징을 받았을 것이다(거의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범죄자가 경찰의 손에 붙들려 가는 대신 주인공의 손에 죽임을 당하듯이).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쉬운 길을 따르지 않는다. 그녀의 남편에게 분명 폭력적인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극단적인 지경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릴리가 집을 나가 친정에 머무르고 꽃집에서 계속 일을 해도 그는 집요하게 그녀를 찾아오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는 우리 현실에서(가령 우리 이웃에서) 충분히 있을법한 인물이다. 사실은 그래서 가정 폭력이라는 소재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이 영화가 인간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탐구해서 관객에게 제시하고 싶었다면 라일의 어린 시절 사고로 인해 어떤 트라우마를 갖게 됐는지, 그 트라우마가 그의 인격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에 대해 좀 더 세심하게 표현했을 것이다. 그가 여성들과 섹스는 하지만 사랑은 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그런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성격 탓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는 그 상처로 인해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 타인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어려운 거 아닐까(그저 나의 추측일 뿐).
어쨌든 릴리는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남편의 폭력 앞에서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 그녀의 친정 어머니는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평생 참고 살았지만, 릴리는 몇 번의 폭행에 단호하게 남편으로부터 돌아선다. 그렇게 자신의 대에서 폭력의 대물림을 끊어낸다. 그녀가 자신의 갓 태어난 딸을 안고 하는 대사 “It ends with us(우리 대에서 끝이야)”에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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