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앞에서 진행된 윤석열(저는 절대 ‘대통령’이란 호칭을 붙이지 않겠습니다.) 탄핵 집회에 다녀왔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국회의사당역에 지하철이 무정차 통과한다고 해서 여의도역에 내려서 국회 앞까지 걸어갈 계획이었습니다. 사실 여의도역 역시 무정차 통과할 수 있다고 해서 처음엔 여의나루역에 내려서 걸어가려고 했지만 다행히 여의도역에 정차하더군요. 이미 지하철 안은 출퇴근 러시아워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사람들로 꽉 들어찼고 여의도역에 내려서도 겨우 발길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 내리니 이미 국회 앞부터 여의도역까지 인파로 가득 차 있어서 국회 앞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바로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나중에 보니, 이 정도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 먼 곳, 아마 2km 앞에 있는 주최 측의 소리는 전혀 안 들리고 휴대폰은 안 터져서 뉴스 기사 검색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답답한 상황 가운데 앉아 그저 구호만 반복적으로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 앞에 앉아 있는 젊은 여성들의 손에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이 들려져 있더군요. 이미 트위터(X)에서 지금 MZ 세대들이 각자 자기 가수의 응원봉을 들고 시위 현장에 나와 있다는 소식을 접하긴 했지만 막상 제 눈앞에서 보니 신기하더군요. 이 젊은 여성들이 “윤석열은 퇴진하라”는 구호에 맞춰 응원봉을 흔드는 모습이 참 이색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이돌 팬들이야말로 이런 문화에 익숙하죠. 공개 방송이나 페스티벌에서 내 가수를 1열에서 보려고 밤을 새며 앉아서 기다리고, 떼창으로 목소리가 단련돼 있으니 응원봉을 흔들며 구호 외치는 것쯤은 일도 아니죠. ^^
그중 제 앞에 앉은 여성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이런 집회에 여러 번 와봤나요?”
“아뇨. 처음이에요.”
“계엄에 대해서 알고 있어요?”
“네, 학교에서 현대사 시간에 배웠어요.”
“윤석열이 계엄을 발표하던 날 어땠어요?”
“미친 X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왜 촛불이 아니고 응원봉을 들고 나왔어요?”
“촛불은 불이 붙을 수도 있어서 위험하니까요. 응원봉을 비싸게 주고 샀는데 이렇게 반짝이는 걸 보관만 해두는 것보다 이럴 때 사용하면 좋잖아요.”
참 기발하고 산뜻해 보였습니다.
집회 현장에서 일행을 만나기 위해 100만 명에 가까운 인파를 뚫고 기어이 국회 앞까지 갔습니다. 그 앞에서는 아이돌 댄스 음악에 맞춰 MZ 세대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흡사 페스티벌 현장에 온 것처럼 춤추고 노래하더군요. 그 앞에는 여러 진보 시민단체들의 깃발이 휘날리는데 두 집단이 어우러져 집회를 하는 모습이 무척 생경하고 이색적이었습니다.
지금의 MZ 세대는 진지하고 심각한 것을 싫어한다죠. 오죽하면 ‘진지충’이란 말이 다 있을까요(사실 사람의 호칭 뒤에 벌레 '충'을 붙이는 건 개인적으로 싫어합니다만). 그래서 무엇을 해도 유쾌하고 발랄하게 합니다. 심지어 대통령 탄핵 집회도 말이죠. 누군가는 ‘탄핵이 장난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제 눈에는 좋아 보였습니다. 이렇게 해야 안전하고 또 지치지도 않고 시위를 할 수 있으니까요.
오늘 결국 탄핵안은 국힘당 의원들이 표결에 아예 불참하는 바람에 안건 상정도 못했다죠. 분노를 넘어 허탈합니다. 이 소식을 여의도를 벗어나 휴대폰이 터진 후에 접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오늘의 결과에 MZ 세대들이 실망해서 다시는 집회에 안 오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지 않기를, 지치지 말고 계속 함께 싸워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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