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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ssue

연예인들의 윤석열 탄핵 시국 발언 이유

본격적인 윤석열 탄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각계 각층에서 이 사안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거나 단체명으로 선언문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연예인들이 정치나 시국과 관련한 발언을 하면 자신의 활동 분야에서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이런 면은 진보 정권보다 보수 정권일 때 더 두드러졌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아니, 그만큼 윤석열 정권의 내란죄가 심각해서일까.

 

연예인들이 시국 관련 발언을 하면서 얻은 불이익의 역사는 유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정권 치하 당시 대중가요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무려 222곡이 금지곡으로 묶였다. 국가 안보에 악영향을 끼친다거나 불신 풍조를 조장한다, 퇴폐적이다, 창법이 저속하다 등 이유가 너무 어이없고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송창식의 왜 불러라는 노래 가사가 반말투라 건방지게 들린다고 해서 금지됐고 고래 사냥이란 노래는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라는 허무주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정말 말이 안되는 시절이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신군부 시대에는 연예인들이 약간이라도 정권 비판 관련 발언을 하면 방송 출연 금지를 당했다. 심지어 대통령을 닮았단 이유로 한 탤런트가 출연 금지를 당하기도 했. 당시에는 어디 모여서 몰래 정권 비판만 해도 잡아가는 서슬 퍼런 시절이었으니 연예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과거 역사를 통과해 살다 보니 우리 사회는 연예인이 공개적으로 시국이나 정치 관련 발언을 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풍토가 자리 잡았다.

 

미국 민주당을 지지하는 조지 클루니와 얼마 전 해리스 공개 지지를 선언한 테일러 스위프트. 사진 출처: 게티 이미지, 테일러 스위프트 SNS

 

 

반면, 미국은 연예인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대선 후보를 당당하게 공개하고 팬들에게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화가 있다. 대표적으로 조지 클루니는 꾸준하게 민주당 지지 발언을 해왔고, 테일러 스위프트 역시 얼마 전 공개적으로 해리스 공개 지지 선언을 하며 그에게 투표하라고 팬들을 독려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정치적 발언을 해도 전혀 불이익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언제쯤이면 이런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을까.

 

그런데 최근 윤석열 탄핵 국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몇몇 연예인들이 공개적으로 관련 발언을 내놓거나 직접 시위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면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물론 불이익에 연연치 않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 정도로 자기 분야에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민시와 이엘도 각각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렸다. / 사진 출처: OSEN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KBS 드라마 <오월의 청춘>에서 주연을 맡았던 고민시는 자신의 SNS에 촛불 이모티콘과 함께 ‘3라는 단어를 올렸다. 지난 7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된 탄핵 집회 시간을 표기한 것이다.

배우 이엘은 모교인 성균관대학교 총학생회의 비상계엄 선포 규탄 성명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그뿐만 아니라 "광화문에서 후암동까지 길목마다 다 쉰 목소리로 소리 높여 위치는 사람들 위로 내리는 이 비는 우리들의 눈물인가 보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사진 출처: 고아성, 신소율 SNS

 

배우 고아성은 여의도로 향하는 차 안에서 찍은 사진에 "한국이 싫어서 X. 한국을 구해야 해서 O"라는 문구를 남겼다. 최근 <한국이 싫어서>라는 영화에 출연한 고아성은 이 제목을 빗대 짧은 글을 올렸는데, 목격담은 없지만 아마 탄핵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

배우 신소율은 아예 시위 현장에 참여한 사진을 올리고 투표해 주세요. 어떻게 이래요라는 글도 함께 올렸다.

 

가수 박혜경은 "대한민국이 국힘당 것이란 말인가? 국민은 나라를 위해 우리를 대신해 잘 해달라고 뽑아준 것인데 왜 도대체 우리의 의견은 무시하고 듣지도 보지도 않고 알아서 국힘당이 대통령을 대신할 거란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거란 말인가?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파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하 생략)라고 올렸다.

 

이승환은 평소에도 진보적 발언을 자주 올린다.

 

가수 이승환도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도 못하게 되자 자신의 인스타에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일갈했다. 그는 역사의 죄인 따위 두렵지 않고 현생의 권세가 더 중요한 분들이신데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민생이 도탄에 빠져도 니들이 어쩔건데라고 생각하실 것만 같은 분들이라고 비난했다. 진보적 정치관을 갖고 있는 이승환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시국 관련 발언을 거침없이 날려왔던 사람이다.

 

최근 3집 정규앨범 '역성'을 통해 혁명정신을 노래한 이승윤 / 사진 출처: 경기일보

 

그리고 나의 친애하는 가수 이승윤은 자신의 인스타 스토리에 다소 긴 글을 올렸다. “진짜 더 말을 얹지 않으려고 했는데 당위와 맥락과 오판과 오만에 대한 진솔한 설명과 해명 없이 아 다신 안 할 게 심려 끼쳐 미안으로 끝날 사안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그 책임을 반쪽에만 일임하겠다는 것이, 가만히 살다가 계엄을 때려 맞은 일개 시민 한 명으로서 듣기엔 거북하기 그지없는 담화문이었다는 말 정도는 해도 되지 않나라고.

이승윤은 최근 3집 앨범 역성을 발표했는데, 락의 기본적인 정신이 저항이란 면에서 애초부터 락스타인 그에게 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보로 보인다.

 

그런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이승윤의 SNS에 몰상식적인 조롱성 댓글을 달아서 팬들의 분노를 자아내기도 했다. 제발 그러지들 마시라. 그런 질 낮은 글을 아무 데나 써놓으면 자신이 조롱하는 대상이 아니라 결국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짓이다. 

그래서 기성세대인 팬들은 그를 걱정하지만 MZ세대인 팬들은 오히려 더 응원하고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연예인도 엄연히 이 나라의 시민이다. 시민으로서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무엇도 겁내지 않고 당당하게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 문화가 어서 자리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