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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

확증 편향의 무서움

 

가끔 '믿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는 모두 남들은 아니라고 해도 자신은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있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좌우 대립이 극심한 나라에서는 오직 나와 내 편이 믿는 것만이 사실이고 진실이며 저쪽 편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고 가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진영 논리에 빠져 버리면 상대방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 자체를 처음부터 차단해 버린다. 가끔 어쩌면 저쪽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나의 빈틈으로 끼어들려고 하면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해 버린다.

 

여기, 그러한 태도를 극단적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지구가 구형(球形, globe)이 아니라 평평(flat)한 원형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에는 이 '평면지구 이론'을 믿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에 관해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지구는 평평하다>에서 그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오랫동안 우리가 당연한 상식이라고 믿어온, 지구는 구형이란 사실을 부정한다. 그 근거로 몇 가지 사실을 제시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우리의 육안으로 봤을 때 지평선이나 수평선이 커브형이 아니라 평평한 직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 등 각종 증거를 '권력자들이 조작한 것'이라고 확신하며, 심지어 지구가 둥글다는 게 영화 <트루먼 쇼> 같은 음모이자 속임수라고 주장한다.

 

이들에게는 오랫동안 과학계에서 모두가 동의한 합리적인 설명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논리를 입증해내기 위해 끌어모은 자료들만이 진실이고 절대 진리일 뿐, 자신들의 이론과 반대되는 과학적 사실은 철저히 배제해 버린다.

 

평면지구 이론을 입증하겠다며 진행했던 실험에서 오히려 지구가 구형이란 실험 결과가 나와도 잠시 당황하지만 이내 곧 "흥미롭네요"라 말하고는 무시해 버린다. 이미 확증편향이 굳어져 버려서 자신의 오류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주장하는 이론을 믿고 싶은데 이것이 현실과 괴리가 생기면 자신의 이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 권력을 가진 그룹이 진실을 알아내는 것을 막고 있다는 음모론을 들이댄다.

 

 

이 평면지구 이론 그룹을 이끌고 있는 리더가 말한다.

"끊임없이 질문하세요. 들리는 모든 얘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이 말 자체는 옳다. 당신이 듣고, 배우는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에 혹시 오류가 없는지 회의하고 반문해 보라는 것은 진리를 탐구하고자 노력하는 이에게는 매우 바람직한 자세다.

하지만 회의가 깊어져 잘못된 신념으로 자리 잡아버리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어떤 이론에 회의를 품고 반문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자신의 이론에는 혹시 오류가 없는지 점검해 보고 반문하는 이성적 태도를 상실해 버리기 때문이다.

 

 

 

한편, 평면지구 이론을 추종하는 그룹 내에도 또 분파가 2개로 나눠지는 것 같다. 이것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을 따르는 그룹(편의상 A그룹)이 있는데, 이들은 더 영향력이 강한 그룹(B그룹)을 음모론적 시각으로 모함한다. 가령, B그룹의 여성 리더의 이름이 페트리샤(Patricia)인데 이름 끝 절차가 CIA이기 때문에 이들이 CIA의 지령을 따르는 그룹이라는 식이다.

페트리샤는 이 사실을 언급하며 A그룹의 음모론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어쩌면 제가 믿고 있는 평면지구 이론도 제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래도 저희의 이론은 틀리지 않아요."

 

이 정도 되면 신념은 이미 종교가 되어버린 상태다. 이에 대해 한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논쟁을 전쟁으로 비유해 보죠. 한쪽은 이기고 한쪽은 집니다. 정설을 믿는 상대가 나를 깔본다고 생각하면 용납이 안됩니다. 그 사람의 말을 안 듣게 돼요. 그 사람이 말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반격을 꾀하는 거죠."

 

이들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에 일가친척, 친구들도 등을 돌리고 어리석다며 손가락질한다. 그럴수록 이들은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공동체 구성원들하고만 어울리게 된다. 그 안에서는 누구도 손가락질받지 않고 내 말에 공감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만일 나중에 자신의 신념이 틀렸다는 것이 명백하게 객관적으로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심리학자는 이에 대해 다시 이렇게 말한다.

 

"만일 그들이 이 믿음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의 인간관계는 어떻게 되는 거죠? 자신이 얻는 게 있을까요? 주류 이론을 믿는 사람들이 날 반겨줄까요? 아뇨, 신경도 안 쓰겠죠. 함께 이 믿음을 공유했던 친구들은 나를 떠날까요? 그렇죠. 결국 이중으로 고독해질 거예요. 그리고는 정체성의 문제로 이어져요. 나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무조건 배척하고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이 다큐는 한 NASA 과학자의 입을 빌어 말한다.

"그들의 탐구심과 규범을 거부하는 태도는 과학적 지식만 뒷받침된다면 과학계에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그들을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안됩니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해요. 두 편이 함께 탐구하는 순간 비로소 논쟁을 끝낼 수 있는 거예요."

 

사실 주류 이론과 배치되는 이론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리석다고 쉽게 조롱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누구나 이러한 함정에 빠지기 쉽다는 사실이다. 서두에 쓴 것처럼, 우리는 누구나 어떤 신념에 사로잡혀 버리면 확증 편향에 빠져 나의 이론과 배제되는 객관적 사실은 배제해 버리고 나의 이론을 뒷받침해 줄 정보만 취사 선택하게 된다.

 

출처: PD수첩

 

2025년 현재 이 나라에서 그것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가 바로 '부정선거 음모론'이다. 이들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 중국과 북한이 개입해서 부정선거를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그것이 허구라는 것을 증명해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릴 뿐 그 증거를 배척해 버린다. 사실은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모습에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에게 불순분자가 누구냐는 간단한 질문을 해도 대답을 못한다. 그저 극우 유튜버들이 알려준 대로 의심 없이 믿기 때문에 자신만의 견해가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황당한 음모론을 주장하는 극우 유투버들의 말을 대통령이란 사람도 믿어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https://www.youtube.com/live/oTh81H-hmqc?si=QE84wGYdJ6GjrAXP

 

 

맹목적인 믿음이란 이토록 무섭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성과 합리성이 남아 있다면 가끔은 한발 뒤로 물러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며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혹시 저들이 맞고 내가 틀린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