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 추천 소설 - 자기 앞의 생
대부분의 소설이 갖춘 미덕 중 하나는, 소외되고 결핍된 인물들, 중심이 아닌 주변부 인물들, 상층보다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역사의 격랑에 휘말리거나, 시대와 불화하거나, 타인들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문학이 주목해야 할 인물들에 대해 깊은 연민과 애정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상찬받아 마땅한 작품이다.
주인공 모모는 어디에서나 환영받지 못하는 아랍인이며 창녀에게서 태어났지만 고아나 마찬가지인 처지. 모모를 포함해 창녀의 아이들을 돈을 받고 맡아 키운 늙은 유태인 창녀 로자 아줌마. 아프리카에서 온 전직 복서 출신의 트랜스젠더 창녀. 가족도 친구도 없는 외로운 노인. 그 외에도 저개발국가에서 온 이민자들(난민에 가까운). 하나같이 상처 입고 못나고 온통 결핍뿐인 인물들이다.
이 소설에 딱히 서사라고 할만한 내용은 없다. 주인공 모모가 자신에겐 엄마나 마찬가지인 로자 아줌마를 비롯해 주변 인물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온기와 애정을 나누고 살아가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너무 잘 알기에 모모는 자기 비하에 가까울 정도로 자격지심도 심하고 위악적인 아이. 그래서 자신에게 잘해주는 어른들에게 오히려 삐딱하고 거칠게 굴지만, 사실은 모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악적인 태도를 장착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누구보다 타인의 관심과 애정이 고픈 아이이며, 자기 주변의 밑바닥 인생들에 대한 애정이 깊은 아이다. 가령 이런 대목.
“나는 늙고 못생기고 더 이상 쓸모없는 창녀들만 맡아서 포주 노릇을 할 것이다. 그들을 보살피고 평등하게 대해줄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경찰과 포주가 되어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층 아파트에 버려진 채 울고 있는 늙은 창녀가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
이 대목을 읽을 때 울컥했더랬다. 아니, 여러 대목에서 울컥해 잠시 한 호흡 가다듬고 다시 책을 읽곤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열네살 짜리 아이의 시선이나 생각이라고 하기엔 그 나이에 걸맞지 않는 요소들이 더러 있어서 작가의 시선이 많이 개입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성인 작가가 어린아이의 시선을 빌려 쓰는 성장소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추가: 예전에 이 책을 읽었었지만, 나의 친애하는 가수 이승윤이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라고 언급해서 다시 읽게 됐다. 이 책을 읽으며 이승윤이 소외되고 연약한 존재들에 대해 거의 본능적으로 관심과 애정이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또 한번 발견하게 됐다.
'The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채식주의자>에 나타난 폭력성 이해하기 (1) | 2024.12.20 |
---|---|
소년이 온다 -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0) | 2024.11.12 |
소설 <스토너> - 평범한 일상이 가장 특별하다. (1) | 2024.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