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he Book

소설 <스토너> - 평범한 일상이 가장 특별하다.

 

소설 <스토너> - 평범한 일상이 가장 특별하다.

 

개인적으로, 남들이 많이 읽는 베스트셀러를 그닥 즐겨 읽지 않는 편이다. 베스트 셀러가 곧 작품성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그런 취향을 갖고 있으면서 베스트셀러 소설이라는 <스토너>를 읽은 것은 순전히 나의 친애하는 가수 이승윤이 읽었다고 해서 언젠가 라방에서 말한 것이 계기가 됐다.

 

 

각설하고, 소설 <스토너>는 우리가 픽션에 기대할 법한 기본적인 요소들을 마치 작정한 듯 피해간다. 그 기본 요소란 것은 요컨대 극적 서사, 예컨대 이런 식이다. 주인공에게 어떤 목적이나 목표가 있다.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나타나 주인공의 목표를 방해한다. 주인공은 그 방해물들을 적극적으로 헤쳐나가 자신의 목적을 이룬다.

 

주인공 스토너의 행보는 이와 정확히 반대다. 그에겐 애초에 인생의 강한 목표도, 목적의식도 없었다. 시골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농사를 더 잘 짓기 위해 농과대학에 입학할 생각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문학에 매료돼 공부하게 됐고, 어쩌다 마주친 여자와 어영부영 결혼을 하게 됐고, 그저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 종신교수가 된다.

 

문학에 매료돼 교수가 된 스토너(이미지)

 

 

큰 꿈은 없지만 죽을 때까지 먹고 살 걱정 없는 평범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를 괴롭히는 주변 인물들이 있다. 서재에서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어린 딸과 대화하는 것이 유일한 남편의 낙을 빼앗아버리는 아내. 한 번 품은 원망을 평생 버리지 않은 채 그에게 치사한 방법으로 보복하는 동료 교수. 그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학생.

 

문제는 스토너가 그들이 자신의 것을 빼앗아 가거나 괴롭혀도 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맞서 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자신이 학과장이 돼서 정당한 권한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스스로 그것을 버리기까지 한다. 이렇게 답답하고 소극적인 인물이 소설의 주인공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긴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분명한 질문 하나가 다가온다. 그렇다면 스토너의 인생은 실패작인가? 그는 평생 불행에 시달렸나? 아니라는 분명한 대답이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 인생이 불행한 이유 중 하나는 무엇엔가 애면글면 매달려 적극적으로 돌파하려 하고 싸워 쟁취하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이 편안하려면 큰 기대와 욕심을 놓아버리면 된다.

만일 그가 좀 더 투쟁하는 타입의 인간이었다면 평교수가 아니라 그 대학의 학장이 됐을 수도 있고, 영문학자로서 명성을 떠르르하게 떨칠 수도 있고, 아내와 이혼 후 진심으로 사랑한 여자와 잘 됐을 수도 있다. 그 대신 그 과정에서 지옥 같은 시간들을 견뎌내야 하겠지.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특별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 평범한 우리는 모두 스토너의 모습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더 큰 욕심을 내지 않는, 그래서 심심하고 재미없고 지루한 인생을 살아가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 책에 공감한 것이 아닐까.

 

그나저나 음악 인생에 드라마틱한 서사를 갖고 있고, 색깔이 선명하고 풍성한 사운드의 곡들을 만드는 이승윤은 과연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