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의 발라드곡 <까만 흔적> 가사 리뷰
이승윤은 록커다. 본인도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기를 원하고, 이승윤을 아는 사람들도 그를 록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컨대 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승윤의 노래들은 시끄럽다고 생각해서 덮어놓고 듣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승윤의 노래들 중에는 서정적인 곡들도 상당수 있다. 대표적으로 <달이 참 예쁘다고>를 비롯해서 <시적 허용>, <빗속에서>, <1995년 여름> 등이 있고 심지어 <새벽이 빌려준 마음>은 어떻게 들어보면 성스럽게 들리기까지 한다.
얼마 전 발표한, 3집 정규 앨범 <역성>에 수록된 곡 <까만 흔적>도 발라드곡에 속한다. 작사, 작곡한 이승윤 본인도 사랑하는 곡이자, 공동 작곡한 조희원 역시 가장 사랑하는 곡이라고 한다. 먼저 가사를 살펴보자.
나는 너를 따라 걸어가다
거기에서 네가 멀어질 때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는
난 그대밖에 없는 그림자야.
나는 너의 그림자
나는 너의 길 따라
너에게로 가기 위해 난 거기야.
숨죽여 기다렸어.
너와 함께 걷기 위해 난 여기야.
언제든 내게로 들렀다 가.
너는 어둠에게 또 무너져
나는 무력하게 또 사라져
소리 질러 봐도 울림 없는
난 너에게만 들릴 헛소리야.
(중간 생략)
나를 불러봐.
홀로 어둠 속에 있다 느낄 때
나는 아주 조그만 어쩌면 포근한 빛이
널 이미 둘러 안고 있었다는 까만 흔적이야.
(이하 생략)
https://youtu.be/OKJkuLD0 yTY? si=cSX759 vnMp4843 K3
이승윤은 시인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작사 실력이 매우 뛰어난 음악인이다. 그는 이 곡을 통해 언제나 자신의 본체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운명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그림자는 자신의 본체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더라도 결코 먼저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다. 그렇다고 자신의 본체를 떠날 수도 없다. 언제든 그 주변에 딱 붙어선 채 숨죽여 기다렸다가 본체와 함께 걸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둠이 찾아와 자신의 본체가 사라지면(즉 어둠에 무너지면) 그림자 역시 자동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다음의 문장을 보면 그림자를 이처럼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승윤의 문학적 감수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아주 조그만 어쩌면 포근한 빛이 널 이미 둘러 안고 있었다는 까만 흔적이야.’
사실 그림자라는 것은 본체를 안고 있었던 빛의 까만 흔적이란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표현이 아닌가!
이 노래는 누군가를 지독하게 짝사랑하는 사람의 심정을 그림자에 빗대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이 간절하게 추구하는 어떤 목표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가닿으려 발버둥 쳐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어떤 대상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평소에는 이 노래를 그저 무심하게 들었는데,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며 이어폰으로 듣다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날따라 이 노래 가사가 가슴으로 와닿았던 것 같다.
'The A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미나리> (2) | 2024.11.25 |
---|---|
영화 <슬픔의 삼각형> (3) | 2024.11.24 |
영화 <올빼미> (0) | 2024.11.22 |
영화 <애프터 썬> (1) | 2024.11.21 |
영화 <추락의 해부> (1) | 2024.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