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이 언급한 그 영화, 추락의 해부
올해 초 이 영화가 개봉되고, 여러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를 했을 때부터 보고 싶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온통 눈으로 덮인 하얀 배경으로 시신에서 붉게 흘러내린 피 한줄기가 매우 강렬해 보여서였다. 하지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굳이 대형 스크린으로 봐야 할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래서 OTT에 올라오기를 기다렸다가 이제야 보게 됐다. 이제야 본 이유는, 나의 친애하는 가수 이승윤이 공연 무대와 인스타 라방에서 언급해서였다. 서론이 길었다. 각설하고...
내용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 것이다.
프랑스 그르노블 외딴 산골 마을에서 남자가 추락사했다. 집 안에는 아내만 있었고 시각장애인인 아들은 그때 산책을 나가서 집에 없었다. 과연 그의 추락은 자살인가, 사고사인가 혹은 살인인가. 집안에는 유일하게 그의 아내만 있었기 때문에 검찰은 그녀를 살인범으로 기소해 재판에 넘긴다. 이후 영화의 절반 이상은 지루한 법정 공방이 이어진다. 중간에 간간이 부부의 이야기가 나올 뿐이다.
아내는 잘 나가는 유명 소설가. 남편은 교수인데 소설가 지망생이다. 남편은 아내의 재능을 질투하며 몇 년째 습작만 한다. 둘은 물론 서로의 매력에 이끌려 결혼했지만 보통의 부부들처럼 다툼이 잦았다. 재판정에서 둘 사이에 있었던 격렬한 싸움이 공개된다. 남편은 아내에게 불만이 많았다. 그는 늘 바쁜 아내가 가정에 소홀했고 제멋대로이며 심지어 자신의 소설을 표절했다고 공격한다. 아들조차 너무 냉정한 엄마가 ‘괴물’이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대개의 재판이 그렇듯 재판정에서 남들에게는 다정해 보였던 부부 사이의 일이 내밀한 것까지 낱낱이 발가벗겨진다. 심지어 양성애자인 그녀가 어떤 여성과 외도를 했던 일까지 폭로된다. 그야말로 타인들에 의해 해부당한다.
이 영화의 제목 ‘추락’은, 남편의 물리적인 추락과 아내의 사회적 추락을 모두 아우르는 중의적 의미로 읽힌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에는 유난히 부감샷(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카메라 앵글)이 자주 등장한다. 앙각샷(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앵글)은 없다.
영화의 초반부, 여자의 변호사가 말한다. 재판은 남들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라고. 그래서일까. 재판정 내에서 종종 카메라 워킹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흔들리며 대상을 비춘다. 그래서 마치 관객이 그 법정 안에 참여해서 피고인과 증인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 효과를 준다. 이 영화를 보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과연 그 남자의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판단해 보라고 권하는 것처럼.
재판이 시작되기 전까지 영화의 전반부의 색채와 톤은 흰색 바탕에 파란색이다. 심지어 시신을 담는 백까지 파란색이다. 파란색은 이성과 냉정을 상징한다. 그리고 객관성을 띄는 색채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판이 시작되면서 영화는 다양한 색채가 사용된다. 마치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 이 사건에 대한 각자의 다양한 주관적 판단처럼.
결국 여자는 무죄 판결을 받지만, 영화는 끝내 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지 않는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혹은 사고사인지, 영화 속 인물들도, 이 영화를 보는 관객도 모른다. 할리우드라면 선명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반전에, 반전도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목적은 Who done it(누가 그랬나?)을 밝히는 것이 아니다. 사실과 진실은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그래서 증인을 자처한 아들의 말처럼, 그는 ‘왜’ 죽었을까만 의문으로 남는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갑분 ‘그것이 알고 싶다’ 톤이 됨). 과연 이 영화가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지는 의문이다. 과연 진실이 무엇일까.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믿음과 해석이다, 이런 주제의 영화는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았다. 게다가 법정물로서의 긴장감이 1도 없다. 칸의 심사위원들은 대체 어떤 점을 보고 이 영화에 그랑프리를 안겨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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